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천안함 피격 사건 (문단 편집) === 북한의 공격 이유 추론 === 이상과 같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침몰임은 명백해졌으나 정작 북한의 '''공격 동기'''에 관하여는 여전히 미상이다. 사고 직후부터 현재까지 계속 북한은 자신들의 소행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민군합동조사단의 발표에 대해서도 '''특대형 모략극'''이라고 반발했으며 공식·비공식 매체들에서도 자신들은 천안함 피격과 무관하다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북한의 공격 의도에 대해서는 다양한 대북 소식통(북한 전문가, 탈북자 등)의 미확인 정보와 일반인들의 추론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내용들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1. '''연평해전 보복설''' 북한은 [[1999년]] [[제1연평해전]], [[2002년]] [[제2연평해전]]에서 모두 패배했다. 이로 인해 북한군은 위신이 크게 손상되었다. 북한 내각 중앙부처 책임부원으로 일하다 [[2012년]] 탈북한 한 인사는 당시 북한 내에서 '''정의의 보복을 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으며 이때부터 군 작전국, 정찰총국, 해군사령부 작전처 등이 보복작전을 계획해 왔다고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121208/51412997/1|증언]]하였다. 그러나 이 설은 이미 연평해전 후 8년이나 지났고 그간 두 차례나 [[남북정상회담]]을 해 온 상태이므로 신빙성이 떨어진다. 1. '''[[대청해전]] 보복설''' 천안함 피격 4개월여 전인 [[2009년]] [[11월 10일]]에 벌어진 [[대청해전]]에서도 북한이 패배하면서 기획된 보복작전이라는 설이 있다. 북한은 세 차례의 [[서해교전]]에서 수상함을 이용한 공격은 더 이상 승산이 없다는 점을 절감하고 이후 기습을 노릴 수 있는 [[잠수정]]에 의한 어뢰 공격으로 방향을 바꿨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대북단체들이 사건 발생 이후 북한의 정보원에게 들었다며 많이 제기한 설이기도 하다. 납북자가족모임에서는 북한군 장교와의 통화에서 들은 내용이라며 [[김정일]]이 친히 남포의 서해함대 사령부를 방문해 보복 명령을 내렸고 이에 [[김영철(북한)|김영철]]·[[우동측]] 등이 작전을 짜 실행했다고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0420010304230310021|주장]]했다. 자유북한운동연합도 북한 군인 가족의 증언이라며 북한 서해함대 사령부가 [[2010년]] [[광명성절]]에 '[[대청해전]] 보복을 위한 결의대회'를 갖고 3월 중순부터 비상대기령을 발령하여 전 장병의 휴가와 외출을 금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시기상 개연성은 높지만 이 역시 대중에 공개된 확증은 없다. 헌데 최원일 함장은 해당 가설을 믿는다. [[https://youtu.be/wZP6Zo3mSOg?si=KpyUCTPWrDfqVuIX|해당 영상 링크 18:25 부분 참조.]] 1. '''[[최고존엄]] 모욕 보복설'''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달리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대북지원에 대해 미온적이었고 갖가지 조건을 붙이면서 북한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이에 [[김정일]]이 몹시 불쾌해했고 북한 노동당과 군부는 [[최고존엄]]이 모욕당했다고 판단하여 군사적 보복을 기획했다는 설이다. 탈북 언론인 [[강철환]]은 이런 설을 [[https://www.youtube.com/watch?v=-wnLzI00dnY|전하면서]] 당시 보복작전 기획 당시 전 [[인민무력부]] 부장이던 [[김일철]]과 [[정찰총국]]장이던 [[김영철(북한)|김영철]] 간에 의견대립이 있었다고도 이야기했다. 이에 의하면 [[6.25 전쟁]] 때부터 평생을 해군에서 근무한 [[김일철]]은 북한 해군의 열악한 상황과 서해의 악조건 때문에 서해에서 잠수정으로 초계함을 공격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영철(북한)|김영철]]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경계가 느슨해 오히려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여 이를 관철시키고 결국 천안함 격침까지 성공시켰다고 한다. 이후 [[김일철]]은 [[2010년]] [[5월 13일]]에 국방위원회 위원,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직위에서 전격 [[https://www.dailynk.com/%e5%8c%97-%ea%b9%80%ec%9d%bc%ec%b2%a0-%ed%95%b4%ec%9e%84-%eb%b3%b4%eb%8f%84%ec%97%90-%eb%8f%99%ec%a7%80-%ed%98%b8%ec%b9%ad-%ec%83%9d/|해임]]되었는데 [[강철환]]은 그 이유도 천안함 격침 성공 이후 [[김정일]]이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자는 군인 자격이 없다"'''고 사실상 [[김일철]]을 지목해 질책했기 때문으로 전하고 있다. 1.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용 도발설''' 한편으로는 [[김정일]]의 보복이 아니라 [[2009년]] 정식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은]]의 위신을 세우기 위한 기획이었다는 설도 있다. [[김정일]]은 [[2008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더 이상 오래 살기 힘들다는 점을 직감하고 급히 [[김정은]] 중심의 후계체제 구축에 들어간다. 하지만 [[김정은]]은 아직 한참 어리고 내세울 공적이 없었기 때문에, 군부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2010년]] 천안함 격침과 이후 [[연평도 포격전]]과 같은 과감한 대남도발을 연속적으로 [[https://www.segye.com/newsView/20190517508614|주도]]했다는 이야기이다. 1. '''군부 강경파 독단 도발설''' 위와 같이 [[김정일]], [[김정은]] 등 [[백두혈통|김씨 일가]]가 직접 지시, 관여한 기습 공격이었다는 설과 달리 북한 군부 강경파의 독단적인 도발이었다는 [[https://n.news.naver.com/mnews/ranking/article/047/0002198273|주장]]도 있다. 이는 [[2010년]]이 [[김정일]]이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집무가 어렵고 [[김정은]]은 아직 확고한 지지기반을 구축하지 못한 권력의 공백기였다는 추론에서 출발한다. 이런 상황에서 군부 강경파가 자신들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후계구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목적에서 [[김정일]], [[김정은]]도 모르게 기습 도발을 감행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흑금성 사건|흑금성]]으로 잘 알려진 전직 특수공작원 박채서가 사건 이후인 [[2010년]] 5월 [[베이징]]의 '중국대반점'[* 단순한 식당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이곳은 중국을 방문한 외국 정상들도 주로 묵을 정도로 [[베이징]]에서 손꼽히는 대형 호화호텔이다.]에서 직접 [[장성택]]을 만나 들었다고 한다. 박채서의 주장에 따르면 북한 군부는 이전부터 [[중국 인민해방군]] [[선양군구]]로부터 직접 군사위성 첩보를 제공받고 있었는데 이를 이용해 천안함의 위치를 파악하고 매복 기습을 펼쳤다고 한다. 이 설은 중국과 북한 군부 사이의 사전교감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나 [[장성택]]은 북한군 지휘계통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많다. 북한 체제 속성상 아무리 [[김정일]]이 건강이 나쁘다 해도 군부가 반역으로 몰릴 수도 있는 이런 일을 함부로 벌일 수 없다는 이야기다.[* 북한 군부의 독단 행동이 가능하다는 것은 [[쿠데타]]도 얼마든지 모의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애초에 이런 가능성을 틀어막고자 [[조선로동당]]은 군부에 대한 철저한 감시체계를 구축해놨다.] 또 [[장성택]]은 중국식 개혁개방을 지지하고 북한 군부와는 계속 대립해 왔기에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빠져드는걸 막고자 [[김정일]]이 천안함 공격과 무관하다는 거짓 정보를 [[흑금성 사건|박채서]]에게 흘린 것으로 보기도 한다. 1. '''우발적 교전설''' 한편 [[백두혈통|김씨 일가]]나 군부 강경파 모두와 무관하게 북한 잠수정이 작전 중에 코너에 몰려 우발적인 [[카운터]] 펀치를 날린 것이 적중했다는 일부의 주장도 있다. [[백령도]] 인근 해역은 북한 잠수정들이 종종 드나드는 구역인데 당시 이중 한 척이 은밀히 남측 해역을 침범해 작전하다 어떤 이유에선가 제때 북측 해역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천안함 등에게 꼬리를 잡혔다는 이야기이다. 이에 북한 잠수정은 곤경을 모면하기 위해 추적해오는 천안함에 어뢰를 발사했고 이것이 적중하여 천안함이 격침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설 또한 천안함이 피격 당시 정확히 무슨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는지, 정말 북한 잠수정의 흔적을 추적하고 있었는지 밝혀진 바가 없어 검증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설들은 사실 어느 하나만이 정답일 수는 없고 여러 가지 또는 모두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과거 연평해전 패전의 굴욕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이명박 정부]]가 이전 정부들과 달리 북한의 자존심을 긁어대 [[김정일]]이 몹시 불쾌해하고 후계자 [[김정은]]의 위신을 세워줄 이벤트가 필요했던 와중에 결정적으로 [[대청해전]]이 벌어지자 기습적인 보복 공격을 기획했던 것으로도 추정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중국 인민해방군]]에서 제공되는 비밀 위성정보를 이용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한편 북한 정보에 정통한 [[주성하]] 기자가 북한 고위층 탈북자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한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1024/109874919/1|기사]]에 따르면 천안함 피격은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김영철(북한)|김영철]] 정찰총국장의 지휘로 서해 남포연락소 소속 [[연어급|소형 잠수정]]이 수행했다고 한다. 남포연락소는 과거 [[정찰총국 육·해상정찰국|조선로동당 작전부]] 산하에서 해상 대남 침투 및 복귀 안내, 전투정찰 임무 등을 수행하던 4개 해상 연락소 중 하나였는데 [[2009년]]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 기간에 [[정찰총국 육·해상정찰국|조선로동당 작전부]]가 [[정찰총국]]의 1국으로 편입되면서 [[정찰총국]] 소속이 되었다. 천안함 공격은 대북지원과 관련된 [[최고존엄]] 모독, [[대청해전]] 패배 등 북한의 누적된 불만에 대한 여러 보복 작전안 중 하나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천안함]]이 공격 대상으로 선정된 이유는 [[천안함]]이 [[북방한계선]] 인근까지 자주 출몰하면서도 [[음파탐지기]] 성능이 나빠 [[잠수정]] 탐지와 방어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공격 작전에는 소형 잠수정 3척이 각각 작전해역 진출을 선도하는 개척조, 1차 공격을 수행하는 공격조, 퇴각시 엄호 및 1차 공격 실패시 2차 공격을 수행하는 엄호조로 나누어 참여했다고 한다. 실제 작전에서는 개척조를 맡은 잠수정이 고장나서 회항하는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나머지 2척이 계속 작전을 벌여 공격조에 의한 뇌격이 성공한 것이라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